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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2023-06-13 가톨릭평화신문 [가족에게 맞아도 쉬쉬… 노인 가정 살피는 사목적 노력 필요]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6-13
조회수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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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65세 이상 고령 인구 10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대한민국 이야기다. 그러나 노인빈곤율, 노인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단연 1위다. 5분의 1이 넘는 국민, 노인들이 신체적, 정서적으로 멍들고 있다. 효(孝)를 중시하고,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고 했던 우리 전통 윤리와 도덕관념이 세대와 시간을 거듭할수록 온데간데없이 증발하는 모습이다. 노인 학대 예방의 날(6월 15일)을 맞아 국내 최초 노인 학대 상담센터인 서울특별시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과 현실을 돌아봤다.


매 맞는 노인들

독립한 아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한 건 15년 전부터였다. 술에 취해 살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하루가 멀다 하고 80대 노모 이진옥(가명)씨를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유산으로 받은 돈 주세요!” 생전 부모를 챙기지도 않던 아들은 깡패처럼 다짜고짜 돈을 요구하더니 급기야 눌러앉아 폭력까지 행사했다. 심지어 베란다를 가리키며 “뛰어내리라”는 요구까지 서슴지 않았다. 어머니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베개로 가슴을 눌러 숨을 못 쉬게 하는 범죄까지 저질렀다. 아들 앞에서 어머니는 두려움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돈 앞에선 부모도 없는 전형적인 노인 학대 사례다.

이복화(가명)씨는 자녀들에게 증여를 마치고 평안한 노후를 보내고자 건물 한 채를 남겨뒀다. 그러나 증여받은 재산을 도박으로 탕진한 아들은 나머지 재산마저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뜨거운 물로 고문까지 가했다. 이씨는 아들이 자신의 몸에 남긴 고문의 상처를 볼 때마다 눈물과 두려움이 다시 올라오는 고통을 겪고 있다.

70대 오나라(가명)씨는 의처증이 심했던 남편과 오래전 이혼했지만, 제대로 못 헤어졌다. 전 남편이 오씨를 감시하기 위해 동거를 고집해서다. 전 남편은 오씨의 외도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폭언을 일삼았고, 오씨의 노년은 만신창이가 됐다. 오씨처럼 노인 부부끼리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겪는 이들도 많다.


매년 증가하는 노인 학대

노인 학대는 노인을 신체적·정서적·성적·경제적으로 학대하거나 방임, 유기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국내 노인 학대 건수는 2021년 6774건으로, 2년 전인 2019년 5243건에 비해 22.6% 늘었으며, 매년 증가하고 있다.

노인 학대는 부모와 자식 간, 부부간, 그리고 타인을 통해 발생하는 등 유형도 다양하다. 힘없는 부모에게 도움과 부양은커녕 모은 재산을 뺏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자녀들, 거동이 불편하거나 질환을 앓는다는 이유로 방치하거나 병원비, 약값이 감당이 안 된다고 눈치 주고 면박하는 경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부모에게 지급되는 노인 연금을 가로채거나 알코올, 도박 중독에 빠져 부모를 ‘없는 사람’ 취급하다 내버리듯 외면하는 사례도 매우 흔하다. 자녀를 비롯한 가족이 행하는 폭력 탓에 가해자를 두둔하고, 고통을 감내하느라 신고조차 못 하며 사는 노인들이 대다수다. 이 같은 현실이 모두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 독거 어르신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노인 학대 가해자는 자녀, 그중에서도 아들이 2020년 34.2%로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2021년부터는 배우자가 29.1%로, 부부 사이의 가해 사례가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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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내 탓하며 견디는 폭력

서울시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박진리(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는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살던 기존의 가족 형태에서 도시화, 핵가족화, 평균수명 연장 등으로 노부부끼리 사는 가정이 늘면서 부부 사이 학대도 많아지는 모습”이라며 “배우자 학대의 경우, 코로나19 상황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배우자가 아플 때 돌봄을 제공하는 상대방의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많은 노인이 자신이 겪는 상황이 폭력인지, 학대인지 모른 채 살아가거나 신고를 주저하고 있다. 노인 학대 신고의 대부분이 비신고의무자(2021년 기준 87.3%)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데, 이중 피해 노인이 신고한 경우는 5%대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주변 이웃이나 관련 기관에 의해 접수되고 있어, 사실상 범죄가 묻히는 것과 다름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노인 학대는 최대 7년 징역과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는 엄연한 범죄 행위다.

박 수녀는 “노인 학대 피해자 대부분은 ‘내가 못나서’라는 자책감을 지니고 있어 궁극적인 학대 예방과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정서적 학대부터 서서히 발전해가는 노인 학대의 특성상 피해자가 심각성을 인지했을 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까지 악화된 경우가 많아 이른 시점에 외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사랑하는 가족을 신고하기 꺼려진다면 “상당 기간 쌓인 폭력과 갈등을 반드시 죽기 전에 해소하고, 어떻게든 가족 간 화해를 이뤄내겠다는 생각으로 적극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의 노인 사목, 가정에도 관심 가져야

교회 내에서도 주변 노인 신자들을 잘 살피는 사목이 이뤄져야 한다. 2년 전 박진리 수녀는 노인 학대의 심각성을 알리는 강연을 갔다가 조심히 다가와 자신의 사정을 꺼내놓는 노인을 만났다. “10년 넘게 가족으로부터 폭행당하고 있습니다. 이웃에게 도움 요청한 걸 가족이 알면 성당마저 못 나가게 할까 봐 말을 못하고 있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박 수녀는 “성당을 열심히 다니는 주변 어르신 중에도 이런 사례를 겪는 분이 없는지 배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교세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가톨릭 신자 594만여 명 가운데, 65세 이상 신자 비율은 26.4%에 이른다. 초고령화된 교회는 시니어아카데미와 노인대학, 웰다잉 강의, 노년을 위한 피정 등 다양한 노인 사목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신자 노인들이 각자 가정에서 화목하게 지내는지, 혹여나 소외당하거나 학대받는 경우는 없는지 살피는 사목도 적극 병행돼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 신자가 80세가 넘도록 가족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일이 기관에 접수됐다. 박 수녀는 “삶의 역경을 딛고 기도하며 살아왔을 신자 어르신께서 신앙인임에도 삶을 등지고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던 사례는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노인은 가정의 살아있는 기억

가톨릭교회는 노인을 정신적 가치와 신앙을 계승하는 가정의 지혜라고 가르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가정의 살아있는 기억인 조부모를 존경하지 않고 돌보지도 않는 가정은 붕괴된 가정이며,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거나 그들을 내버리는 사회는 뿌리가 뽑힌 사회”라며 “노인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살아 있는 일원이라고 느끼게 하려면 감사와 존중과 환대의 집단의식을 일깨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7월 넷째 주일을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제정해, 삶과 신앙의 경험을 물려주는 노인을 성령의 선물로 바라보도록 하고 있다. 노인들이 전하는 지혜와 더불어 사회와 가정이 그들과 따뜻한 경험을 더욱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박 수녀는 “예수님의 사랑은 한편으로 인권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교회부터 이러한 가치를 신자들과 공유해 나누고, 각 본당은 노인 학대 관련 교육을 제공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 보호기관과 연계하는 사목에 앞장서주는 가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인 학대 신고 전화 : 1577-1389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