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 기울여주세요.
서울특별시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관장 박진리 수녀)은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가 2000년 국내 최초로 설립한 노인 학대 상담 기관이다. 20년간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이 걸어온 길은 곧 국내 노인 인권 보호 및 학대 예방 사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 학대 문제를 개인 문제 혹은 가족 간 갈등 차원이 아니라 외부의 개입이 필요한 사회 문제로 인식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 학대 방지와 학대받는 노인 보호를 위한 국가의 제도적 근간을 마련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됐다”며 수상기관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04년 개정된 노인복지법에 노인 학대 개념이 처음 도입될 수 있었던 것도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의 활동이 중심에 있었다. 학대받는 노인을 위한 복지 기관은 현재 17개 광역 자체 단체에 38개소가 있다. 노인 학대 관련 상담은 물론 일시 보호, 예방 교육, 캠페인 등을 펼치고 있는데, 모든 사업의 출발은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이다.
남부노인보호전문기간은 노인 학대 24시간 상담 전화를 운영하며 현장 조사, 사례 관리, 피해 노인 보호, 의료 지원 서비스 등 통합적 지원을 펼쳐왔다. 학대 예방과 인권 교육을 통해 노인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개선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감춰진 학대 사례를 발굴하고 학대 실태와 심각성,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역할과 필요성을 알리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김민철 과장은 “우리 기관의 역사성과 고유성은 직원들의 큰 자부심이기도 하다”면서 “어르신에게 보다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를 멈추게 했던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도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활동은 계속됐다. 노인 학대 상담 특성상 학대 현장 조사와 대면 상담이 필수기 때문이다.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사회복지사들은 코로나19 이전과 다름없이 현장 조사와 대면 상담을 진행했다. 방역복을 착용하고 마스크를 두 겹씩 써 가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곽상현 팀장은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코로나19 이전보다 노인 학대 발생이 20%가량 증가했다”면서 “전화상으로는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없어 직접 현장에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학대라고 하면 흔히 신체적, 정서적 폭력만을 떠올리는데, 최근 들어서는 경제적 착취도 문제가 되고 있다. 노인의 경제권은 생존과도 직결되는데 자녀나 친척, 지인이 당사자 몰래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돈을 가로채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들이 스스로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기관장 박진리 수녀는 “학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우리 모두는 결국 노인이 되는데, 자신의 노후를 생각한다면 어떤 노인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그러나 노인보호전문기관 종사자 수는 노인 인구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박 수녀는 “관련 기관 종사자들은 밤낮없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사명감으로 버텨내고 있다”면서 “기관 종사자들의 처우와 업무 환경 개선도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