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 기울여주세요.
대기업에 다니던 막내아들은 10년 전부터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더 좋은 처우로 이직을 권유받아 회사를 나왔지만, 어째선지 이후부터 일용직을 전전했다. 무력감에 술에 의존하던 그의 증세는 5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더욱 심해졌다.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윤소화(가명, 데레사, 85)씨의 집 현관문 유리는 천이 덧대 있었다. 술 취한 아들의 폭력이 남긴 흔적이다. 10평 남짓한 집안은 성한 곳이 없었다. 화장실 타일은 군데군데 깨져있었고, 고장 난 보일러를 고치지 못해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벽 곳곳은 새카만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윤씨는 오직 자식 걱정뿐이다. 곡기를 끊은 채 보름을 연달아 술만 마시던 아들은 건강도 크게 나빠졌다. 당뇨에 간경화로 치료가 시급하지만, 당장 이를 돕지 못해 한스럽기만 하다. 윤씨 앞으로 나오는 기초 연금 30만 원으로는 매달 40~50만 원 되는 아들의 정신병원 입원비를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다행히 큰아들이 돈을 보태주고 있지만, 그 역시 일용직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터라 더 손 벌리기도 어렵다.
고령에다 성치 않은 무릎으로 대신 일할 수도 없다. 노인성 질병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들도 먹지 못한 지 오래다. 끼니는 인근 교회에서 급식 봉사를 하며 싸온 남은 도시락으로 때운다. 아들이 아프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매주 4회씩 나가는 급식 봉사는 끊이지 않는 근심 속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가 되고 있다.
한 아들은 생계를 위해 나가 살고, 다른 아들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 신앙생활은 윤씨에게 큰 버팀목이다. 막내아들의 폭력이 나날이 심해져 이웃에게 도움을 구해보기도 했지만, “찾아오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윤씨 집에서 큰소리가 나도 들려오는 건 걱정과 관심이 아닌 ‘시끄럽다’는 듯 냉대하는 이들의 시선뿐이었다. 윤씨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한달음에 달려오는 본당 수녀와 교우들 덕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병원에 있는 아들도 엄마를 따라 세례받은 뒤, 입원할 때면 꼭 성경책과 묵주를 챙겨달라고 한다. 아들은 증세가 심해지기 전 몸이 아픈 본당 어르신들을 모시고 성당에 다닐 정도로 의젓했었다. 아들이 겪는 고통이 모두 자신 탓인 것만 같아 윤씨의 눈물은 마를 새가 없다.
“그저 막내아들이 순한 양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아들이 제 한 몸 건사해 잘 살아갈 수 있길 하느님께 빌어요.”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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